아일랜드 (복제인간, 인간존엄성, 생명윤리)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복제인간 소재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OTT 서비스가 지금처럼 넘쳐나기 전, 그냥 TV를 돌리다가 마침 시작하길래 아무 생각 없이 틀어놨던 게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니 어느 순간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영화 '아일랜드'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아무 정보 없이 보다가 당한 반전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걸린 영화를 그냥 틀어두는 경험,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저도 그날 딱히 재미있는 게 없어서 그냥 보고 있었는데, 초반에는 솔직히 좀 지루했습니다. '미래 배경 SF인가?' 정도로만 생각했고, 채널을 돌릴까 말까 몇 번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통제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추첨으로 '아일랜드'에 선발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 그리고 그 틈에서 혼자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는 주인공 링컨. 이 설정이 서서히 쌓이면서 저도 모르게 "이게 뭔가 이상한데?" 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주인공이 통제 구역 안에서 나비 한 마리를 발견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지구가 오염되어 생존자들만 격리된 공간에 산다는 설정인데, 나비가 있다는 건 바깥 세계가 실제로 오염되지 않았다는 뜻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 장면에서 저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고, 이후 반전이 터졌을 때 진짜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복제인간 이야기인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복제인간이라는 소재가 꺼내는 질문들

복제인간(Clone)이란 특정 개체의 유전 정보를 그대로 복사해 만들어낸 생명체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유전자가 100% 동일한 또 다른 나 자신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기술입니다. 영화 속에서 이 복제인간들은 장기 이식(Organ Transplantation)을 위해 존재합니다. 장기 이식이란 기능을 잃은 신체 기관을 다른 공여자의 건강한 장기로 교체하는 의료 시술로, 현실에서도 이미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영화가 무서운 건 이 설정이 완전한 허구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1996년 복제양 돌리(Dolly)가 탄생한 이후 인간 복제에 대한 논의는 과학계와 윤리학계 모두에서 진지하게 다뤄져 왔습니다. 생명윤리(Bioethics)란 생명과학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복제 기술이 발전할수록 이 분야의 논쟁은 더 첨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 속 부유층 '스폰서'들은 자신의 건강과 수명 연장을 위해 복제인간을 만들어 관리합니다. 이 부분을 보면서 저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됐습니다. 물론 도덕적으로 맞다는 게 아니라, 그 욕망 자체가 이해된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돈과 명예를 다 가진 사람이라도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게 무너진다고 느끼는 건 사람이라면 공통된 감각 아닐까요. 그 절박함이 극단으로 흐르면 영화 속 시나리오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나라에서 인간 복제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유네스코(UNESCO)는 1997년 인간 게놈과 인권에 관한 선언을 채택하며 인간 복제를 인간 존엄성에 반하는 행위로 규정했습니다(출처: UNESCO 인간 게놈과 인권 선언).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결국 법이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그 욕망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 존엄성 앞에서 돈은 얼마나 강한가

영화에서 복제인간들은 자신이 복제인간이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그들은 감정을 느끼고, 두려워하고, 사랑하고, 탈출을 꿈꿉니다. 인간 존엄성(Human Dignity)이란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내재된 가치와 권리를 뜻하는데, 이 영화는 복제인간도 그 존엄성을 완전히 갖추고 있다는 걸 계속해서 보여줍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복제인간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영화 속 링컨이 진짜 링컨보다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원본 링컨은 복제인간을 도우려다 죽고, 그 삶을 복제인간 링컨이 이어받는 결말은 어떻게 보면 인과응보(因果應報)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인과응보란 자신이 저지른 행동의 결과가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뜻인데, 복제 시스템을 만든 자들이 결국 그 시스템에 의해 무너지는 구조가 딱 그렇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영화를 보고 돈이 많으면 인간 복제도 생각할 수 있겠다는 분들도 분명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그 심리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복제된 존재도 결국 살아 숨 쉬고 생각하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그 욕망은 결국 누군가의 생명을 도구로 쓰겠다는 선택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게 이 영화가 끝나고도 마음에 걸린 지점이었습니다.

영화가 제시하는 복제인간 윤리 딜레마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복제인간도 감정, 사고, 자아를 갖춘 인격체인가 — 영화는 명확히 '그렇다'고 답합니다.
  2. 생명 연장을 위해 또 다른 생명을 희생시키는 것이 허용될 수 있는가 — 부유층의 욕망이 이 질문을 현실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고 영화는 경고합니다.
  3. 인간 복제 기술이 실용화된다면 그 통제를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 — 영화 속 연구소는 철저히 은폐된 사기업이었고, 그게 더 섬뜩했습니다.
  4. 복제인간의 법적 지위는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 — 현행 법 체계는 이 질문에 아직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말이 허탈했던 이유, 그리고 남은 질문

영화가 끝나고 허탈하다는 느낌이 드셨다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정확히 그 감정이었습니다. 나쁜 의미의 허탈이 아니었습니다. 뭔가 거대한 걸 본 뒤에 오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멍함 같은 것이었습니다.

링컨이 탈출에 성공하고, 지구가 오염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결국 혼자 떠날 수 있었음에도 시설 안의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돌아가는 선택을 합니다. 이 부분에서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결자해지란 일을 만든 사람이 그 일을 직접 해결해야 한다는 뜻인데, 링컨이 직접 나서서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장면은 그 말이 딱 어울렸습니다.

영화 '아일랜드'는 2005년 작품이지만 지금 다시 봐도 전혀 낡지 않은 질문을 던집니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인간 배아 복제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으며(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인간 복제가 아닌 방향으로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방법, 즉 줄기세포 치료나 유전자 치료 분야의 발전이 어느 선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는 앞으로도 계속 논의될 것입니다.

우연히 TV를 켰다가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이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리 정보를 알고 봤다면 반전의 충격이 절반도 안 됐을 테니까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이게 만약 현실이라면'이라는 생각을 한참 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한 번쯤 그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시길 권합니다. 복제인간에게 삶의 권리가 있는가, 없는가. 생각보다 쉽게 답이 나오지 않을 겁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x3hSMeA2LkA